[기념일을 기념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일상적 평화와 인권의 상관관계
서울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김신현경
1991년 8월 14일, 전 ‘위안부’ 김학순이 얼굴을 드러내고 ‘위안부’ 경험을 증언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했다. 그전까지 전쟁시 성폭력은 으레 벌어지는 일이며 피해자의 수치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름과 얼굴을 밝힌 김학순의 구체적인 증언은 피해자의 수치를 가해자의 폭력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김학순의 증언 이후 1992년 아시아의 여러 여성 단체들이 결성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2012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바로 김학순의 최초 증언과 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한국 정부는 201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세계의 ‘위안부’라는 말처럼 김학순의 증언은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전 세계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전 아시아 및 네덜란드 피해자가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1992-1994년)과 르완다 내전(1994년)에서의 집단 강간 사태가 벌어지면서 국제 사회는 전시 성폭력(wartime sexual violence)에 대한 인식, 법규정, 판례, 법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전시 성폭력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적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 면밀하게 계획된 공격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전시 성폭력이 적에 대한 공격일 수 있는 이유는 평화 시 여성의 성이 남성, 민족 및 국가의 소유물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제국 일본 본국과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의 여성들은 일본 남성 및 국가의 소유물로 간주되어 체계적으로 강제 동원되었고, 다른 아시아 여성들은 일본의 적국 여성들로서 공격의 일종으로 강간 및 동원된 것이다. 즉, 전쟁은 일상과 완전히 다른 상태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특정 논리가 극대화된 상태다.
이런 통찰은 ‘위안부’ 문제를 흘러간 과거사나 국가 간 외교 대결이 아닌, 여성 인권과 일상적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확장된다. 여성 인권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명제가 아니다. 여성 인권은 여성은 물론 인간이지만, 그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남성의 후손 생산과 성적 즐거움을 위한 사물,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소유물로 여겨져온 여성의 성은 여성 인권의 핵심에 위치한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인 성폭력, 성희롱, 스토킹,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이 ‘위안부’ 문제와 연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 의미에서 일상에서의 평화적 관행과 규범의 실천이라는 적극적 의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상적 평화는 바로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받는 인권 사회에서 기대,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